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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을 병원 없어, 눈물의 원정출산…시군구 4곳 중 1곳 이렇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국 250개 시·군·구 가운데 산부인과가 아예 없거나 산부인과가 있어도 분만이 어려운 지역이 63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4곳의 시·군·구 중 한 곳(25.2%)꼴로 ‘분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정부가 매년 10월10일을 ‘임산부의 날’로 지정해 임산부를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려 하고 있으나, 이들 지역에 사는 임산부는 진료와 출산을 위해 다른 지역까지 ‘원정’을 떠나는 불편을 겪고 있다.

9일 보건복지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분만이 가능한 전국 산부인과는 2011년 777개에서 지난해 481개로 10년새 38.1%가 줄었다. 2004년엔 분만 가능 전국 산부인과가 1311개에 달했다. 출생아 수 감소, 낮은 의료 수가, 의료사고 부담 등에 따라 산부인과 병원 및 의사가 계속 줄고 있다는 게 복지부의 진단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문 닫는 지역은 주로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에 집중됐다.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20곳인데, 인구가 1만6000명~5만2000명에 불과한 인구 급감 지역들이다. 인구감소와 저출산으로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드니 산부인과의 유지가 힘들게 된 것이다.

산부인과가 있으나 분만실이 없는 지역은 총 43곳이다. 마찬가지로 인구가 줄어드는 농어촌 지역이 대부분이다. 인구가 20만명이 넘는 울산 북구와 의왕·과천 같은 수도권 신도시도 포함됐으나, 이들은 대도시와 붙어있는 지역이다. 산모들은 거리가 가까운 인접 대도시의 산부인과를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처럼 분만 가능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은 2011년 6월 51곳에서 지난해 말 63곳으로 꾸준히 느는 추세다. 특히 농어촌은 거주 지역에 산부인과가 없어 119구급차를 타고 1시간 이상 거리의 다른 지역으로 긴급 검진·출산을 가는 경우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이런 분만 인프라 붕괴는 해당 지역 산모와 신생아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다. 이진용 서울대 의대 교수팀이 2019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분만취약지역의 평균 유산율은 4.55%로 비(非)분만취약지역(3.56%)보다 약 1%포인트 높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는 2011년부터 이들 지역의 분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 산부인과 개소시 최고 10억원의 시설·장비비를 지원하고, 운영비를 보조하는 ‘분만취약지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산부인과 전문의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인력을 수급하고 24시간 운영을 하기가 벅차다 보니 한계가 크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분만취약지역을 무조건 없애겠다는 식이 아닌, 해당 지역 산모 입장에선 어떤 혜택이 도움될까를 연구하는 식으로 정책 접근 방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며 “예컨대 해당 지자체는 주기적으로 산모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일정에 맞춰 각종 정기검사 진행을 도우며, 지역 보건소·소방본부와 연계해 긴급 검진·출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식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게 실질적인 해법”이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내놓은 관련 정책이 저출산과 지방 소멸의 속도를 쫓아가기가 힘들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2017년 이후 5년 연속 역대 최저 기록을 고쳐 쓰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주 한국의 올해 출산율은 0.76으로 0.8 아래로 내려가고, 이후에도 계속 감소해 2026년에는 0.69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잿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고용정보원은 228개 기초지자체 중 약 절반인 113곳(49.6%)을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2010년 61곳에서 12년 새 거의 두 배가 됐다. ‘인구 감소→출산율 저하→분만 산부인과 폐원→분만 인프라 붕괴→젊은 인구 유입 감소’라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인구감소지역에 균등하게 예산을 투입해 모든 지역을 살리려 하기보다는, 살아남을 수 있는 지역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강원도 양양은 인구 통계만 보면 고령화로 침체해 소멸을 걱정해야 할 도시지만, 주말에는 사람이 몰려 활기가 넘친다”며 “이젠 이런 생활인구 차원으로 인구 개념을 확장해 중장기 인구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임산부의 날

매년 10월10일. 임산부를 배려, 보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2005년 제정했다. 10월은 풍요와 수확의 달이고, 임신 기간은 10개월이란 점에서 10월10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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