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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는 삶에서 벗어나라 1% 미만 임원 장수 비결 [트라이씨 기업심리학]

입력 : 
2023-08-09 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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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임원에 요구되는 3가지
장기 성과·변화·인재 육성
자신이 이룬 성공에 등떠밀려
기존 방식으로 단기성과 올인
자리 대한 본능적 욕구 떨치고
우선 순위 바꿔 상황 주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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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국내 100대 기업에서 일반 직원이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은 0.83%라고 한다(유니코써치 조사 결과). 100명 중 1명, 1%가 안 된다.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다. 물론 운이 따라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올라간 임원 자리에 있는 기간은 보통 5년 내외로 알려져 있다. 이걸 30대 그룹으로 한정하면 만 3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임원들 스스로 '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이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한다.

임원들에게 성과는 기본이다. 성과가 미흡하면 2년도 되지 않아 옷을 벗어야 하는 일도 허다하다. 성과에 덧붙여 회사에서 임원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하는 요청 사항은 크게 세 가지다.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인재를 양성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상 행동은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기에 작은 행동의 변화라 하더라도 전체 체계의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당위적으로 접근하는 변화는 무의식적인 저항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 연구소의 심층 인터뷰 결과 '장기적 관점'에 대해 임원 본인들이 토로하는 심정은 다음과 같다.

"결과와 숫자가 모든 것이다, 금년 성과가 제일 중요하다, 납기 내에 못하면 사임할 수도 있다, 당장 해야 할 일도 너무 많다,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에 미래를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장기 과제는 어차피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 확신이 없다, 실패가 두렵다, 실수하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

회사에서는 장기적 관점을 강조하지만 오너가 아닌 이상 단기 성과를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깔려 있는 임원들의 속마음은 '이 자리에 계속 있고 싶다, 더 높은 자리에 가고 싶다'다. 그래서 눈에 띄는 당장의 성과에 목숨을 걸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새로운 변화 시도'에 대한 임원들의 생각은 이렇다. "새롭게 바꾸었다가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까 걱정된다, 기존 방식은 본전이 가능하고 리스크가 없다, 새로운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새롭게 바뀌어도 별 차이가 없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가 우려된다, 불확실한 2개보다 확실한 1개가 낫다, 결국 내 방식이 맞는다."

이런 사정으로 기존에 검증된 방식을 계속 쓰게 된다고 한다. 이때 임원들의 속마음은 이 문제의 심층에 대해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마음이 있다. 1%의 확률을 뚫고 올라온 사람들이니까 보통 사람들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인재 양성'에 대한 하소연은 더 절박해 보인다.

"성장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나도 스스로 컸다, 내 성장 모델을 참고했으면 좋겠다, 경력 개발이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일 잘하는 사람이 결국 잘되더라, 전배 요청하는 우수인력의 손실이 걱정된다, 다들 여기를 떠날 생각만 한다, 개개인의 경력 관리를 일일이 다 챙길 엄두가 안 난다, 주어진 업무 하기에도 바쁘다."

한마디로 경력 개발은 기본적으로 구성원 자신의 책임이며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내가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성원 개인에 대한 관심이나 육성 면담은 거의 갖지 못한다고 한다. 왜? 그럴 만한 시간이 정말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회사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인재를 양성하라'고 하지만 정작 임원들은 '단기 성과에 올인하고, 기존 방식을 유지하고, 인재 양성은 각자 개인의 몫'이라고 여기며 일상에서 분투하고 있다. 그러한 아이러니는 '계속 이 자리에 있고 싶다'는 간절함,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자신감,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다'는 분주함의 속마음이 만들어내는 삼중주다.

심리학자가 보기에 그 삼중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쫓기는 삶'이다. 무엇에 쫓기는 것일까? 자신의 성공을 만들어낸 바로 그 상황에 자기 자신이 등 떠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상황을 면밀히 재검토하고 재구조화하지 않으면 아마도 회사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 계속 그런 일상을 보낼 가능성이 다분하다.

'계속 이 자리에 있고 싶다'는 본능적 욕구에서 한발 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그 자리에 계속 있을 확률을 높인다는 것은 인생의 역설이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도 동일하다. 자리가 나를 따라오게 만들어야지 내가 자리를 쫓아가면 삶이 너무 불안정해진다.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전제는 과거형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작은 것이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은 회사 생활뿐만 아니라 중년기 개인 생활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다'는 말은 일상의 현재 우선순위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업무가 우선이고 사람은 그다음이라는 프레임을 계속 유지한다면 앞으로 언제까지고 사람을 챙길 시간은 나지 않는다. 업무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당신이 언제까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기에, 나 말고도 뛰어난 후배를 양성하는 것은 임원의 우선 과제다.

회사에서 임원으로 오래 계셨던 선배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시라. 대부분 그런 분들은 상황에 반응(re-action)하는 것이 일상의 주(主)가 아니었을 것이다. 반응만 하다 보면 매일 매시간 정말 바쁘고 시간이 없게 된다.

지금 떠오른 훌륭한 선배 임원분들은 본인 일상에서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상황을 주도하셨을 것이다. 또 이미 충분히 똑똑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줄 알았다. 그중에는 뻔한 이야기, 틀린 이야기도 많았을 텐데 일단 먼저 듣고 상대가 깨우치게 하거나 그 와중에 본인이 새로운 통찰을 얻으셨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자리에 10년 이상 계시면서 계속 승진하셨을 가능성이 크다.

어찌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느냐고? 그건 이 방식이 중년기 이후의 인생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만드는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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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환 트라이씨 심리경영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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